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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길청
글로벌캐피탈리스트
글로벌경영평론가
사단법인 대한민국유권자총연맹 자문위원
ㅁ일본으로 부터의 교훈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국민소득이 6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준이었고, 1990년 중반까지도 아직은 3배가 넘는 상당한 수준을 유지했었다. 그러나 2018년 IMF의 발표로 본 일본의 1인당 명목 GDP는 4만1천 달러 정도이고, 우리나라는 3만3천 달러 정도로 그 격차가 1,2배정도로 아주 가까이 좁혀졌다. 사실 IMF는 이미 이전에 한국이 구매력평가(PPP)기준으로는 2017년경이면 일본을 넘어설 것이라고 평가한 바도 있는데 이제 그런 전망이 점차 우리 앞에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아주 무례한 행동을 많이 하고 있다. 정말 먼 친척이 가까운 이웃보다 못하다는 말도 있지만, 인물, 문화, 인습, 자연환경, 유전적 배경 등으로 보아 우리와 결코 남이라 하기 어려운 그들은 왜 이렇게 우리에게 긴 세월동안 불행을 주고 불편을 주는 것인지 도대체 그 속내를 알 길이 없다. 공연히 먼 나라들인 미국이나 유럽의 행사에는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아시아 주변국들에겐 웃는 낯 한번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그들은 참 어리석고 불쌍하기도 하다.
지금 4차 산업혁명은 그들도 알겠지만 미국, 독일, 몇몇의 작은 과학기술 선진국 그리고 우리나라 등이 선두에 서서 이끄는 형국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은 아직 내부적인 구조적 문제들이 산적한 입장이라 미래로 가는 행보가 아주 늦은 편이다, 그래도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는 경제회생을 위해 국가체질을 개선하는 대대적인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군사적이고 외교적인 무례를 주변국에게 자행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처지가 지난 날 같은 위상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마치 이제 겨우 산업국가 초입에 들어선 중국이 어느 새 미국과 “생산대국놀음”에 빠진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한 때 일본은 경제적 동물(economic animal)이란 비난을 받을 정도로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나라였지만, 한동안 수출로 번 돈이 좀 쌓이고 나서부터, 또 엔화가 고평가되고 나서부터는 “재정대국놀음”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상은 급변해서 그들이 1993년 마이너스 경제로 추락한 후, 근 25년이 넘도록 지구촌은 하루가 다르게 기술혁명의 연속이고 지각변동의 소용돌이였다.
그러는 동안 우리나라는 아시아주변국의 외부요인부터 발생한 외환위기도 극복하고, 당당하게 최상의 민주화도 이루고, 이제는 한반도 민족사회 통합까지도 우리의 손 안에 들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이 시기를 통해 정보통신을 비롯한 과학기술과 지식문화 소프트의 산업화에 전력을 경주하였다. 이 시기는 본디 인문과 학습과 문화 민족인 우리에겐 정말 잘 할 대응할 수 있는 세상의 변화였다. 특히 우리는 기업이나 개인이 아닌 국가의 시스템 차원에서 기술과 산업변화에 대응하는 놀라운 전략적 움직임도 유지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다시 우리는 여세를 몰아서 자율운영 사회, 지능생산 사회를 위한 산업혁명의 변화도 빠르게 준비하고 있다. 그 돈 많던 일본도 하기 어려운 보편적이고 제도적인 복지국가와 공유이익 사회도 우리는 국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내고 상호 이해와 포용으로 지금 서서히 그 간극을 소화해 가면서 서로 접근하고 있는 중이다.
요즘 서울 부동산 상승을 계기로 하여 첨예한 문제인 부동산의 보유세 도입논의와 함께, 전향적인 도시재생 활성화 주제가 동시에 논의되는 것도 우리가 보여주는 국가위상의 품격이 담겨있는 국가처신의 좋은 예이다.
한마디로 우리와 일본은 서로 국격(national dignity)의 차이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과 일본 간의 이 같은 국격의 차이는 자부심(self esteem)과 자만심(self sufficiency)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자부심이란 도리와 도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의 겸손한 내부적 보람이라면, 자만심은 한 때의 차이와 수준을 고정가치로 보는 자기만족에서 오는 외부적 거만함이다. 일본은 한 번도 여러 아시아 국가를 동료나 이웃으로 보지 않는 자기착각의 나라이다. 자신들도 분명한 아시아국가로서의 자기기만이기도 하다.
누구나 돈만 많이 가지고 있으면 찾아오기 쉬운 것이 바로 자만심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자주 회자되는 갑질의 횡포도 사실은 누군가 자만심의 부끄러운 발로이다. 그러나 또 실수나 과오를 너그러이 받아주고 포용하면 이 또한 너그러운 공동체의 자부심이 된다.
일본은 이제 아무리보아도 우리가 그렇게 애써서 본받을 만한 나라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들과의 과거를 잊어서도 안 될 나라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 때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기업들의 위상저하를 보면서, 이제는 모두가 사업의 이해당사자인 소셜 비지니스 캠퍼스시대의 개방성과 수평적 협력정신이 약한 기업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혁신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을 터득하게 된다.
사업의 개방성과 수평적 협력이란 키워드는 점점 공급의 사양(specifications)이 사용자모드(user-oriented)로 변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자기 함정은 전형적인 공급자위주의 기술정책(techno-poly) 욕심이다. 세계적으로도 저명한 첨단과학자이자 전자공학자인 도쿄대의 야나기다교수는 techno-democracy 란 저서에서 일찍이 일본기업은 머지않아 테크노폴리로 인해 실패하게 될 것이란 비판을 하고 영국의 대학으로 옮겨간 일이 생각이 난다. 그들이 노벨상을 타는 실력은 인정하지만 시장과 교감하고 소비자 지향적인 연구개발에 둔감한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지구촌 시장은 지금 두 가지의 큰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것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더 빠른 육로수송의 발달과 북극해의 활동성 증대이다. 한반도는 그런 점에서 아주 중요한 변화를 앞두고 있다. 만일 북한과의 비핵화문제가 잘 해소되면 우리는 한반도를 대륙으로 가는 길목으로 만들 수 있다. 일본은 그럴 때 반드시 우리 땅을 지나가야 한다, 또한 북극해를 이용하는 방안도 한반도를 통해 러시아를 거쳐 가야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물론 그들이 바로 러시아로 가려면 쿠릴 4개 섬을 놓고 러시아와 영토분쟁을 다시 해야 한다.
일본은 이제 우리가 외면하면 여러모로 존재감이나 실익이 떨어지는 나라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런 나라가 문화적 민주정부를 가진 우리에게 결례를 범하고 있다. 이건 백번을 양보해 보아도 못난이의 몽니(perverseness)이다. 그들은 지난해 후반부터 다시 마이너스성장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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